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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서울]백선엽‘국립묘지’vs박원순 죽음➥‘동전 양면’ 아니다➘“백선엽 아니면 박정희독재 없었다”
김원섭 칼럼  |  webmaster@dail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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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2  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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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원섭 언론인> <프로필> <1960년6월13일 (만58세), 경기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데일리메일 편집인, 편집국장 / 대국엔터테인먼트 대표 / 고려대학교 교우회 이사 / 경력=1997~1999 미디어오늘 편집장 / 1989~1997 국제신문 차장 / 2006~2009 CNB뉴스 편집인, 편집국장

[데일리서울=김원섭 칼럼]"임자, 박(정희) 소령 알지?"

"아다마다요, 사관학교 때 우리 중대장을 하셨는데요!"

"어때, 지금 그 사람 놀고 있는데 같이 일하면 안되겠나?"

"좋습니다. 보내주세요. 과거에 모신 적도 있습니다.

"알았네, 나도 도울테니 같이 잘 지내게"

지난 1949년 5월23일 육사 8기생 졸업식이 있기 일주일 전 쯤인 5월 중순경 백선엽 육본 정보국장이 전투정보과 사무실로 불쑥 들어섰다. 당시 전투정보과 과장은 유양수 대위였다.

형집행정지로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난 박정희는 한동안 민간인 신분으로 지내다가 백선엽 육본 정보국장의 도움으로 정보국 전투정보과에서 문관으로 지냈다.

숙군 당시 중형을 선고받은 군인 가운데 구명된 케이스는 박정희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과연 어떤 사정으로, 누구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을까?

박정희가 김창룡팀에 의해 처음 끌려간 곳은 서울 충무로 입구 신세계백화점 인근 서울헌병대였다. 당시 헌병대 건물은 콘센트 막사였다. 그는 이곳 영창에서 1주일을 보냈다. 박정희와 육사 2기 동기생인 김안일(육군 준장 예편) 정보국 특무과장은 이 무렵 박정희를 불러 직접 신문한 적이 있다.

김 과장은 박정희에게 양면괘지 한 묶음을 건네며 '자술서'를 쓰라고 했다. 그러자 박정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써내려 갔는데 그 속에서 좌익세포들의 명단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수사팀은 이 명단을 토대로 마치 '고구마 캐듯' 세포들을 색출해 냈다. 김창룡 등 수사팀은 '박정희 리스트'의 위력에 혀을 내둘렀다.

‘박정희 구명’의 최대 공로자랄 수 있는 백선엽, 장관 부임 직후 어느날 정부-여당의 당정회의에서 백 장관이 국회의원에게 호되게 당하자 박 대통령이 의원들의 말을 막고 나서며 "백 장관이 부임한 지 얼마 안돼 아직 업무파악을 제대로 못한 모양인데 다들 좀 봐주시오!"라며 분위기를 바꿨다.

박정희는 집권 기간 내내 그에게 대만 대사 등 여러 나라 대사와 장관, 국영기업체 사장 등의 '자리'를 만들어 줘 나름대로 자신을 구명해준 은혜에 대해 보답했다.

박정희 재판 때 재판장을 맡았던 김완룡씨는 당시 주변사람들의 구명 노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 백선엽 국장한테서 전화가 왔더군요. 백 국장은 '박정희가 (좌익활동 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고 피해 없으면 목숨만 살려줄 수 없느냐'며 박정희를 살리는데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당시 박정희는 '지리산'에도 관계하고 해서 일단 잡아 넣은 상태였죠."

김씨는 "백 국장 이외에도 당시 나와 약수동 앞뒷집에 살았던 송요찬 장군과 김형일 장군 등도 그의 구명을 요청해 왔다"고 밝히면서 "당시 박정희는 구체적인 행동이 드러난 것이 없었고, 수사에 적극 협조한데다 머리좋은 수재라국립묘지 안장자격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국가장으로 장례된 사람과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사람으로 되어 있다. 또 장성급 장교 또는 20년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 전투에 참가하여 전사하였거나 임무수행중 순직한 예비군대원 또는 경찰관이다.

이밖에 군인,군무원 또는 경찰관으로 전투나 공무 수행중 상이를 입고 전역, 퇴역, 면역 또는 퇴직한 사람이다.

순직한 백선엽씨는 대극무공훈장을 2회 받았다. 그래서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있다.

그러나 백선엽이 박정희를 구명하지 않았다면 5.16 쿠데타도 일어나지 않았고 19년 장기독재도 없고 독재자의 딸 박근혜의 헌정사상 탄핵.파면.구속되는 흑역사를 쓰지도 않았다.

특히 백씨는 부정축재로 학교를 설립, 학원재벌로 변신했다. 바로 선인재단, 58년 기존의 학교를 인수하여 설립하였는데, 백선엽의 선, 백인엽의 인을 따서 선인학원으로, 백선엽의 호 운산, 백인엽의 호 운봉, 어머니의 호 효열, 아들 이름 진흥을 따서 학교이름을 붙였다.

이후 상상을 초월한 전횡이 이루어졌는데, 인근 주민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침해하고, 특히 부지확장과정에서 중국인 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려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교직원들을 무조건 해고시키고, 교사들에게 예비군 복을 입혀서 보초를 서게 하고 순찰을 돌게 했다. 또한 돈을 받고 부정입학, 편입을 시키고 심지어 졸업장을 팔기까지 하였다.

80년 초 운봉, 운산,항도 세학교 학생들이 수업거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부정비리가 적발되어 백인엽 이사장은 선인학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구속되었지만 석방이후에도 계속 주인행세를 하면서 배후조정을 일삼았다.

90년대 ‘범선인학원 정상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학원정상화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는 인천시민운동으로까지 확장되어 결국 1994년 시립화가 이루어졌다

지금 친일파출신 63명이 국립묘지인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중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석범, 백흥석, 송석하, 신현준등 11명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결정한 친일파다.

이들의 묘를 현충원에서 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친일부역자이며 부정축재자였던 백선엽을 국립묘지 안장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해방후인 1946년 2월 군사영어학교 제1기로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던 송요찬 장군처럼 국립묘지 안장이 아닌 선산(충남 청양군 화성면 광평리)을 택해라!

송 장군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4.19의거때 계엄사령관으로서 군의 중립을 고수하고 국민에게 신뢰감을 부여함으로서 유혈사태를 방지하고 4.19혁명을 성취시키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특히 1963년 8월 박정희 대통령 출마를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동아일보에 발표하여 구속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목숨을 끊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서울시장 장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잘못으로 목숨을 선택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공과는 평가해야 한다. 사보다 공이 더 크다. 그는 국립묘지 안장의 조건이 되지만 이를 포기하고 부모곁인 경남 창녕군 장마면 박 시장 부모 합장묘로 간다고 한다.

죽으면 화장했을 때 한줌의 재다. 불교에서는 화장을 통해 한 줌의 재로 통해 세상에 뿌려 다시 자라랄 수 있는 토양의 밑거름을 만들고 있다.

“애국자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지금 태극기를 짓밟고 있는 재향군인회등 수구골통들의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피난처다.

글/ 김원섭 언론인> <프로필> <1960년6월13일 (만58세), 경기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데일리메일 편집인, 편집국장 / 대국엔터테인먼트 대표 / 고려대학교 교우회 이사 / 경력=1997~1999 미디어오늘 편집장 / 1989~1997 국제신문 차장 / 2006~2009 CNB뉴스 편집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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